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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환우 부모 수기] 혈우재단 3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관리자 ㅣ 2021-04-02 14:05 ㅣ 369

안녕하세요. 혈우환우 엄마입니다. 저는 아이가 고3때부터 일을 시작하여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알게 된 아이의 혈우병

저희 아이는 태어나고 바로 혈우병을 진단받았습니다. 28년 전, 대학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출산 후, 입원 중에 신생아실에서 기초 피검사를 하였습니다. 피검사는 정상으로 나왔지만, 아이의 팔이 많이 부어올라서 담당선생님께서 정밀검사를 하자고 하셨고, 검사 결과 혈우병을 진단받았습니다.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혈우재단과 한양대병원 이항 선생님을 알려주셔서 퇴원하고 바로 혈우재단에 등록하고, 이항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남편에게 혈우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와 아내를 괴롭히고 구박하려면 이혼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모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최선을 다해 잘 키워보리라 마음먹고 또 마음먹었습니다.

지금과 달리 아이가 어릴 때는 예방요법을 하지 않을 때라,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오랫동안 아팠습니다. 아이는 오른쪽 발목과 왼쪽 팔꿈치가 표적관절이 되어 잘 지내다가도 한 번씩 자연출혈이 되곤 하였습니다. 출혈이 발생하면, 유치원은 보내지 못하였고, 오전에는 가정에서 학습지로 공부하고, 오후에는 미술 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보내며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6살에는 경희대병원에서 표적관절이었던 발목과 팔꿈치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하면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 6개월가량 정말 열심히 물리치료를 받아야했습니다. 손가락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피아노 학원은 도중에 그만두었습니다.

 

즐겁게 보낸 아이의 학창 시절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과 관계도 좋고 학교 선생님에게도 이쁨받는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에는 입학통지서 뒤에 혈우병이라고 적어서 제출하여 아이 담임선생님에게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미리 알려주어, 아이에 대한 거부감을 덜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매 학년 올라갈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초등학교 매 학년 봄가을 현장 학습 때에는 응고인자제제는 물론 제가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6학년 때, 경주 수학여행을 갈 때는 아이는 수학여행 버스를 타고 가고, 저는 밤기차로 출발하여 새벽에 경주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자는 아이를 깨워 숙소 화장실에서 주사를 놓아주고, 저는 다시 경주 시내에서 대기 하였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시어 다시 숙소로 가서 아이 수학여행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같이 다니다가 저녁에 먼저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고, 아이는 다음날 올라왔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보건실에 한 번 맞을 주사를 진단서와 함께 비치하며 보건 교사와 소통을 하였습니다. 제가 집 밖에 있을 때 아이에게서 몸이 불편하다고 연락이 오면 보건실로 와있으라고 하고 바로 학교 보건실로 가서 주사를 놓아주었습니다. 주사를 맞고 나서 아이는 바로 교실로 올라가 다시 수업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현장 학습 때는 당일로 갈 경우에는 예방주사를 맞혀 보내면서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때는 담임선생님, 학년주임 선생님과 상의하여, 제가 따라가는 것 보다 학교 보건 선생님이 함께 가는 것으로 하였고, 제주도 수학여행을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보건실에 주사약을 비치하였고, 2학년 제주도 수학여행도 자가주사로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아이는 초중고 모든 학년을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길고 힘들었던 입원생활

중학교 1학년 1학기 말, 아이가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식사 후 축구를 하고 하교한 날이었습니다. 학원에 가던 중 기운이 없고 속이 좋지 않다며, 체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로 강북 삼성병원 응급실로 갔고, 도착 후 얼마 안 되어 아이가 토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토할 때 초록색 담즙이 나와 곧바로 입원실로 올라갔으나, 34일 동안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앰뷸런스 타고 서울대 응급실로 이송하던 중 앰뷸런스가 고장 나기까지 해서 겨우겨우 서울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나서는 혈우병 담당 의사가 없다며, 한양대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여 선택의 여지없이 한양대 병원에 가서 밤 12시 넘어 입원을 하였습니다.

입원 후, 아이가 혈우재단에서 처방받는 응고인자가 병원에 준비되어 있지 않아 병원에 똑같은 약이 준비될 때까지 보호자가 약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여, 여러 혈우환우 집에서 약을 빌리기 위해 땀을 흘렸습니다. 진단은 십이지장 천공으로 피가 지혈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복부에 피가 가득해 배가 불룩 올라와서, 24시간 약 투여를 하고, 담즙은 콧구멍에 콧줄을 끼워서 위로 받아 냈습니다. 콧줄은 2주에 한 번씩 다른 콧구멍으로 바꿔가며 끼워야 했는데, 아이가 참으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복부 CT를 찍으며 75일간 입원하여 치료받고 퇴원했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은 회사에 다니면서 퇴근하고 병원으로 와서 아이를 보았고, 초등학교 4학년인 여동생은 병원에서 저와 함께 있다가 남편이 병원으로 퇴근하면, 아빠와 함께 집으로 가는 생활을 하였답니다.

 

아이의 새로운 도전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닐 때는 여름엔 동유럽, 몽골 여행, 겨울엔 서유럽 여행 그리고 일본, 홍콩, 중국, 말레이시아를 다녀오면서 아이는 성장해 나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6살에 수술했던 오른쪽 발목에 뼈가 자라나서 보행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수술을 하였습니다. 경희대 병원에 입원해 두 번째 수술을 하고 재활 치료를 하며 아이는 취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민 끝에 혈우재단의 취업교육비지원을 통해 세무사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작년(2020)1차 시험은 통과되어 현재는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항상 함께한 응고인자제제

아이를 키우면서 혈우병은 남에게 피해주는 병이 아니며, 몸에서 응고인자가 부족해 주사로 몸에 보충해 주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지낼 수 있으니, 몸에 이상이 생기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바로 엄마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야기하며 지냈습니다. , 아이 친구 엄마들이 아이에 대해 물어보면 혈우병이라고 정확히 이야기해 주며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고 약을 복용하듯이 아이도 엄마에게 빠르게 알려주어 주사를 맞으면 일상 생활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고 이야기해주었답니다. 그래서 늘 저는 아이의 행동 범위 안에 있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니거나, 놀이 공원에 갈 때도 항상 약을 휴대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아빠 친구 가족(24)과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 관광 중 팔이 아프다 하기에 관광버스 안에서 주사를 놓아주었습니다. 주사를 맞고 짜인 일정을 같이 소화했을 때 아이가 참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혈우재단 30주년을 축하합니다!

2001, 남편과 함께 코엑스에서 하는 혈우재단의 혈우병 세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남편은 평소 아이에게 출혈이 발생하면 엄마를 힘들게 한다며 짜증을 내곤 했었는데, 세미나 강연을 듣고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우리 가족은 조금 더 편안해졌습니다. 이후 대방동 여성회관에서 하는 세미나에도 가족과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재단에서 하는 자가주사 교육도 받아서, 해외여행 시 자가 주사로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회에서 하는 세미나에도 연차를 내고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담당 공무원, 의사선생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듣고 나니, 새삼 입장이 너무 다르고, 넘어야 할 산이 매우 높고 또한 우리는 힘이 없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혈우재단이 있어서 약을 처방받아가며 잘 키울 수 있었습니다. 만약 혈우재단이 없는 시대에 아이를 키웠다면 어땠을 지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재단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의료 과학 분야의 발달과 혈우재단의 발전을 기대합니다. 늘 그래왔듯이, 혈우인 입장에서 더 많이 노력해주시고 보다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국혈우재단이 2021년에 30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나이 30이면 이립(而立)이라 하여,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라고 합니다. 그곳에 늘 있어서 우리 혈우인의 큰 힘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가 현재의 모습을 잘 유지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빌고 또 빕니다. 혈우가족 여러분들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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