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는 끝이 없다.

성락헌님

Q1.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혈우병 A형 8인자 중증 환우입니다. 생후 백일 무렵 세브란스병원에서 처음 진단받은 이후 지금까지 이 질환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몸의 제약 때문에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삶을 더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고요.

Q2. 이번 코헴 여름 캠프에서 만나 뵈었는데, 참석하게 된 계기와 소감을 간략하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캠프에서 처음 뵙게 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무엇보다 지회 회원들은 물론 전국 각지에 계신 선배님들과 후배들을 한자리에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컸어요. 실제로 만나서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같은 질환을 가진 분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정말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Q3. 작년 WFH(세계혈우연맹) 총회에 참석하신 경험을 말씀해 주세요.

네, 작년 4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WFH 2024 세계대회에 참석했습니다. 공식적인 첫 해외 학회 방문이라 긴장도 됐지만, 전 세계 135개국 3천여 명의 환우와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어요.

특히 짐바브웨에서 온 환우(Elton Sare)를 만난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짐바브웨에는 혈우병 환자가 약 200명 정도 있지만 한국의 코헴회 같은 환우 단체가 없어서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에게는 당연한 존재인 환우회가 그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한국 혈우병 환우들이 누리는 사회적, 의료적 시스템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Q4. 해외여행을 통해 혈우병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나요?

과거에는 해외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캐리어의 절반 가까이 약품으로 채워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항상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켰죠.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치료제의 발전 덕분에 출국 전 단 한 번의 투약만으로도 안전한 여행이 가능해졌으니까요.

무거운 의료용품을 챙길 필요가 없어졌고, 약물 관리 스트레스도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변화를 통해 혈우병이 더 이상 제약이 아닌,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조심스럽고 제한적인 여행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롭고 활기찬 여행을 만끽할 수 있게 된 것, 그 자체가 저에게는 큰 행복이자 감사한 일입니다.

Q5. 늦은 나이에 학업에 도전하시게 된 계기, 특히 세 개 과를 수료하시기로 결심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휴머니티학과, 미국문화영어학과를 졸업했고, 이번 학기에는 재난안전학부 소방방재학과에 새로 입학했습니다. 사실 공부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하고 싶어서"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 몸이 아파 충분한 교육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도 하나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놓쳤던 배움의 기회를 지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었고,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과 기쁨이 저를 계속 공부의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Q6. 각 전공을 선택하실 때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었는지, 공부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사회복지학과는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선택했어요. 휴머니티학과는 인문학을 통해 삶의 깊이를 더하고 싶었고, 미국문화영어학과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영어로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싶어서였죠.

소방방재학과는 제가 시설 안전 관리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더욱 공감이 가는 학과였습니다. 전공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고, 그 모든 배움이 제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Q7. 질환 치료와 학업을 동시에 하시면서 힘든 점이 많으셨을 텐데,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그걸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물론 쉽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어요. 하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그런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배움 자체에서 오는 기쁨"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잠시 느려져도 멈춘 게 아니다"라고 스스로 말하며, 작은 걸음이라도 계속 나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Q8. 쉽지 않은 학업 여정을 걷는 과정에서 큰 힘이 되어준 주변 사람이나 경희사이버대학교 시스템에서 받은 특별한 도움 또는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큰 힘은 언제나 제 곁에 있어 준 배우자였습니다. 단순한 동행을 넘어, 제가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경희사이버대학교의 온라인 시스템도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할 때도 집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제 페이스에 맞춰 학습할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온라인이라는 특성이 제 상황에 매우 적합했습니다.

Q9. 공부를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 경험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궁금해요.

하나의 과정을 완주하고 졸업장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이 가장 뿌듯한 순간이에요. 그 졸업장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제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증명서 같은 것이었습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는 것처럼", 작은 성취라도 그것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저에게는 큰 의미가 됩니다. 그 순간들이 쌓여서 지금의 제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Q10. 여러 전공을 배우면서 삶이나 생각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시간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각각의 학습을 통해 더욱 많은 시간을 의미 있게 투자하면서, 그 시간의 가치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배움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도 이제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깨달음들이 저를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Q11. 만학도로서, 그리고 세 개 과정을 마치신 경험이 본인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학문유천(學問有天)", 즉 '학문에는 끝이 없다'는 말처럼, 끝없이 공부하며 실천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하나로 여기는 자세’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삶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Q12. 세 전공을 모두 수료하신 만큼,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별히 거창한 목표는 없습니다. 다만, 제 삶이 계속되는 한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 제 바람이자 목표입니다. 배움의 여정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Q13.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 특히 공부를 시작하려는 환우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공부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의 공부가 지식과 함께 정규 교육 과정을 의미했다면, 그 후의 공부는 나의 삶의 여정에 같이 가는 배우자처럼 아주 친밀하고 가까운 친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배움에는 늦음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용기와 계속해 나가는 의지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한 걸음 내딛으시길 바랍니다. 배움은 나를 완성하는 가장 깊고 친밀한 여행이 되고, 언젠가 반드시 내 삶의 빛이 되어 돌아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