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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가족 이야기

"혈우가족 이야기"는 혈우재단 재단보 ‘코헴지’에 소개되었던 환우와 가족의 경험담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개인 보호를 위해 일부 글은 익명으로 게시합니다.

휠체어 위에서 다시 쓰는 삶의 방향 이병길 님
관리자 ㅣ 2026-04-30 17:20 ㅣ 931

휠체어에 앉게 된 후, 오히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이병길 환우, 혈우병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을 일구고, 기부 천사로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휠체어가 굴러가며 남긴 희망과 삶의 궤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강원 홍천의 아침은 유난히 고요하다. 창문을 열면 밤새 가라앉았던 공기가 천천히 움직이며 산자락을 드러낸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아직 잠에서 덜 깬 마을의 기척을 느끼며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휠체어에 몸을 싣고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이 고요한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온전한 나 자신으로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무사히 눈을 떴다는 사실, 오늘도 하루를 살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먼저 감사부터 하게 된다. 휠체어 위의 삶은 내가 계획했던 인생의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삶은 어느새 내가 가장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자리로 변해갔다. 불편함과 제약 속에서도 나를 다시 바라보게 했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을 천천히 마주하게 해주었다.

 

몸과 함께 살아온 시간

 

나는 태어날 때부터 혈우병 A형이라는 이름을 안고 살아왔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던 시절부터 내 삶에는 ‘조심’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다. 넘어지지 말 것, 부딪히지 말 것, 뛰지 말 것. 어른들의 걱정 어린 말은 분명 사랑이었지만, 어린 나에게 세상은 늘 위험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혈우병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병이다. 멀쩡해 보이는 몸 안에서 작은 출혈 하나가 큰 위협이 된다. 또래 아이들은 넘어져도 금세 털고 일어났지만, 나는 작은 멍 하나로 며칠씩 누워 있어야 했다. 학교 운동장은 늘 부러움의 공간이었고, 체육 시간은 피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친구들이 땀을 흘리며 뛰어다닐 때, 나는 교실 창가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여기에 어린 시절 소아마비까지 겹치면서 내 몸은 더 많은 제한을 요구했다. 걸음은 또래보다 느렸고, 관절은 쉽게 붓고 아팠다. 병원 복도는 놀이터보다 익숙했고, 간호사의 손길은 친구의 손보다 더 자주 닿았다. 그 시절 나는 ‘아픈 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그 이름은 나를 세상과 조금씩 떨어뜨려 놓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몸보다 마음이었다. 왜 나는 늘 조심해야 하는지, 왜 나는 늘 누워 있어야 하는지, 왜 나는 남들처럼 살 수 없는지, 그 질문들에 누구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다만 “그래도 살아야지”라는 말만이 남았다. 그 말은 위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혼자 견뎌야 한다는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지만 혈우병은 여전히 내 삶의 중심에 있었다. 출혈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관절은 점점 약해졌다. 응고인자 치료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치료가 늦어지면 일상의 리듬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약 하나에 하루의 컨디션이 좌우되는 삶 속에서 나는 늘 내 몸의 상태를 먼저 계산해야 했다.

 

그리고 몇 해 전, 사고는 내 삶을 다시 한 번 멈춰 세웠다. 걷는 것이 어려워졌고, 결국 나는 휠체어에 앉게 되었다. 처음 휠체어를 받아들였을 때의 절망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두 다리로 서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또 시작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좌절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휠체어 위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치료는 생존이 아니라 존엄이다

 

혈우병 환자에게 치료는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기준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오랜 시간 나는 치료를 ‘버텨야 하는 과정’으로만 여겼다. 아프지 않기 위해 견뎌야 하는 의무처럼 느꼈다. 응고인자 주사는 내 일상의 중심에 있다. 손을 씻고, 약을 준비하고, 희석하고, 혈관을 찾기까지의 과정은 늘 긴장과 집중의 연속이다. 바늘이 혈관을 정확히 찾지 못하면 다시 시도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출혈조차 부담이 된다.

주사를 맞는 순간의 통증보다 더 힘든 것은, 이 과정을 평생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몸이 지친 날에도, 마음이 무너진 날에도 치료는 미뤄지지 않는다. “오늘은 쉬고 싶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삶. 그러나 이 반복 덕분에 나는 다시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며,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 치료는 나를 억누르는 족쇄가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문이었다.

 

혈우병 환자라면 누구나 치료 공백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산다. 약이 제때 공급되지 않을까, 병원에 가지 못할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까, 예기치 못한 출혈이 찾아오지는 않을까. 출혈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한 번 시작되면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통증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번에는 얼마나 오래 갈까”라는 두려움이다. 나는 치료 공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몸으로 겪어왔다. 주사가 늦어지면 관절은 빠르게 붓고, 움직임은 제한된다. 그 시간이 쌓이면 회복은 더뎌지고 상처는 깊어진다.

 

그래서 혈우병 환자에게 치료의 연속성은 곧 삶의 연속성이다. 이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삶은 쉽게 무너진다. 이 긴 여정에서 의료진과 한국혈우재단은 나에게 단순한 지원 기관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만난 의사와 간호사들은 내 몸 상태를 숫자와 기록이 아닌 ‘사람’으로 바라봐 주었다. 아픔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는 눈빛,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는 치료 이상의 위로였다.

“괜찮습니다. 같이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 한마디는 수많은 불안 속에서 나를 다시 숨 쉬게 했다.

 

한국혈우재단의 치료 지원과 상담, 환우들을 향한 꾸준한 관심은 내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이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관리받는 환자’가 아니라,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오랜 세월 치료를 받으며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치료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라는 사실이다. 아픈 사람에게 치료를 제공하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다. 환자는 단순히 배려에 감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존재다.

 

이 인식의 전환은 내 삶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휠체어에 앉은 지금, 치료의 의미는 더 분명해졌다. 치료 덕분에 나는 오늘도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고, 운동을 할 수 있으며, 누군가를 만나러 나갈 수 있다. 치료가 없었다면 나의 하루는 침대 위에서 멈췄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건 단지 약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갈 자격이다.”

 

휠체어 이후, 나만의 운동이 시작되다

 

휠체어를 타게 된 이후 내 몸은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걸음으로 유지하던 균형은 사라졌고, 몸의 무게 중심은 상체와 팔, 어깨로 이동했다. 혈우병 A형을 안고 살아온 나에게 작은 충격과 반복적인 사용은 곧 출혈과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움직임이 줄어들면 근육은 빠르게 약해지고, 약해진 근육은 관절을 보호하지 못한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사고 이후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체력의 감소보다 회복 속도였다. 예전에는 하루쯤 쉬면 돌아오던 컨디션이 이제는 며칠을 조심해야 회복되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원칙을 세웠다. 기록을 깨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오늘을 안전하게 통과하기 위한 운동, 통증은 참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횟수와 강도보다 관절의 정렬과 호흡을 우선한다. 하루를 여러 번으로 나누어 짧게 움직이되, 멈추지 않는다. 아침에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운다. 목과 어깨, 팔꿈치와 손목을 작은 범위로 천천히 움직이며 호흡을 맞춘다. 오전에는 고무밴드를 이용해 상체와 코어를 가볍게 자극한다. 무리가 느껴지면 즉시 멈추고 반대 근육을 풀어준다. 오후에는 관절 보호에 집중하고, 이동 전후에는 반드시 준비와 정리를 한다. 저녁에는 마음을 위한 운동을 한다. 음악을 틀고 호흡을 길게 가져간다. 숨이 길어질수록 생각은 가벼워진다.

 

사고 이후 나를 괴롭히던 불안은 규칙적인 운동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잃었다. 오늘의 몸 상태를 스스로 평가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연습은 나를 자책에서 신뢰로 옮겨놓았다. 운동은 나를 강하게 만들기보다 정확하게 만들었다.

 

어디까지가 안전한지, 언제 쉬어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휠체어 위에서의 운동은 포기가 아니라 재설계였다. 빠르게 달리던 삶에서, 오래 지켜내는 삶으로의 전환이었다.

 

나눔이 삶의 방향이 되다

 

내 삶이 다시 빛을 갖게 된 것은 ‘나눔’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도움을 받기만 하던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홍천 지역에서 어르신들을 찾아가고, 홀로 사는 이웃을 만나며 나눈 대화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받았다.

 

사람들은 나를 ‘휠체어 타는 기부천사’라고 불러준다. 하지만 나는 천사가 아니다. 다만 아파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본 경험, 먼저 넘어져 본 경험이 있기에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는 말이 있었다.

혈우병 환자로 살아온 긴 세월은 내게 분명한 지혜 하나를 남겼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느려도 괜찮고, 자주 쉬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코헴지는 나에게 그런 ‘함께의 공간’이다. 환우들의 수기와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다시 힘을 얻는다. 누군가는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웃고 있고, 누군가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나에게 “오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응원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혈우병으로, 혹은 다른 이유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의 삶은 결코 작지 않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는 빛이 될 것이라고. 나는 오늘도 휠체어 위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치료를 받고, 운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나눔을 이어간다.

 

이 평범하지만 소중한 하루들이 모여, 결국 나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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