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언제나 가까이  - 이병길 환우님

[코헴지 179호] (2021년 5/6월)

오늘 아침 사무실로 가는 길에서, 지금 내가 비록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하지만 하루하루 무사한 이 순간, 나는 더없이 행복한 사람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지난해 여름이 절정에 이를 때쯤이다. 샤워를 하다가 넘어 져서 그나마도 힘들게 걷던 걸음도 못 걷고 지금은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 지만, 그때만 해도 평생 이대로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건 아닌가? 혈 우병이란 희귀난치병 때문에 수술도 할 수 없고 세상이 어찌 이리 불공평 할까? 수많은 절망과 싸워야만 했을 때에는 ‘행복’이란 단어는 감히 생각 조차 할 수 없었다. 

행복, 참으로 묘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이란 두 글자를 쟁취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기 살기로 일하는 것도, 안 먹 고 안 쓰고 허리띠 졸라매며 저축하는 것도, 때로는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수익에 집착해야 하는 것, 이 모두가 행복을 누리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아닐까? 과연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애쓰며 살아야 하는지. ‘산 너머 저 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기에 남을 따라나섰다가 산 너머 저쪽 더 멀 리 가야 행복이 있다고 말하여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다.’라는 독일의 시인 카를 부세(Karl Busse)의 시 ‘산 너머 저 멀리’의 글귀처럼, 인생이란 평생 행복만 좇았는데 정작 주위에 널린 것이 행복임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게 되는 건 아닌지. 

나는 요즘 이 글을 머리맡에 붙여 놓고 산다. ‘욕심을 낼수록 삶은 오히 려 고행이 됩니다. 모든 고뇌로부터 벗어나고자하면 먼저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먹고사는 일이 평생 큰 짐이라고 걱정을 늘 사서 하는 나는, 앞만 보고 열심히 살면 언젠가 행복이 내게 오리라 단순하게 믿어왔 다. 나 자신조차도 진정한 행복을 찾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평생 가슴 앓이만 하는 인생이 될 뻔했던 것이다. 

행복은 저 멀리, 저 높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곳곳에, 비록 대단하지는 않아도 지극히 평범한 곳 여기저기에 있다는 걸 느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찻값을 내고, 장애인 콜택시를 타도 요금을 치르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내게 가장 소중한 행복을 얻는 데에는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으니, 이만하면 세상은 공평한 셈이다. 특히 나처럼 밥이나 겨우 먹고 사는 사람에게 행복을 느끼기 위한 비용마저 치러야 한다면, 세상 천지에 원망만 넘치겠지. 이따금 나는 스스로에게 거듭 되묻는다. 나는 지 금 행복한가?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전혀 불행하 지 않고 모든 것은 다 잘 될 것이라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를 하며 살아 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모든 일은 일찍이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점차 순조롭게 풀려나가는 것 이 세상 이치다. 그렇다면 우리는 요즘 잘살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렇지 못 한 건가. 그리고 행복한 건가. 하루 밥 세 끼 못 먹는 사람 없고 전체 인구 중 91%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한 가구에 자동차가 평균 1대가 넘고 웬 만하면 대형 TV도 갖고 있다. 우리의 행복지수는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 라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재물이 넘쳐도 행복한 것이 아 니고, 물질적 혹은 정신적으로 부족하다 해도 결코 불행한 것만은 아니 다. 인간이 어울려 사는 세상사에 거스르지 않고 순리에 따라 살아간다면 이것이 곧 행복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 나는 장애가 전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장애인들은 장애를 비관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 자존심을 꺾을 필요도 없다. 비장애인과 동등하고 떳 떳하게 주어진 숙명이나 운명이라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꿋꿋이 살아가야 겠다. 새로운 삶에 주어진 또 하나의 선물로 현재는 홍천군지체장애인협 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 권익 신장과 복지향상을 위해 앞 장서면서, 더 많은 장애인 가족, 이웃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며 행 복을 찾고 있다. 장애인 단체 활동을 통해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 게 되었다. 되려 혈우환우 가족이기에 소중한 인연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어 행복했었다. 남은 생이 얼마나 일지는 모르겠지만 외롭고 소외된 이 웃,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지원군이 되며 행복을 찾고 싶다. 

사실 나도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희귀 난치성 질환인 혈우병 중 증 A와 소아마비 중복 장애를 가진 혈우환우다. 무척 몸이 아프고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태어날 때부터 혈액이 응고되지 못하는 난치병을 앓 던 자식을 위해 매일 학교를 등교시켜 주었던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25년전 까지만 해도 몸이 아파도 치료비만 수천만 원이 넘게 들어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의료보호 혜택을 받아 극복할 수 있었던 감사함을 잊지 않고자 봉사와 기부를 시작했다. 내가 숨 쉬고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인생을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희귀 난치성 질환인 혈우병 중증 A와 소아마비 중복장애를 가진 지체 장애인인 나는 강원도 홍천 농촌지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태 어날 때부터 지체장애와 함께 이름도, 원인도 모르는 병을 앓아 제대로 걷 지도 못하고 이유 없이 매일 몸이 아파서 학교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등교 해야만 했다. 매일 아들을 등에 업고 다닌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초 등학교는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자 병세가 더 악화됐다. 결국 중학교 3개월이 마지막 학창시절이 됐다. 그러나 학업을 향한 집념으로 그래도 한글은 겨우 깨우쳤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혈우병 장애인이란 이유로 집안 생활이 전부였던 나 에겐 외출은 엄두도 못 내고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양치질을 하다가 잇몸 에서 피가 나는 등 일상생활 중 입은 가벼운 상처만 나도 피가 멈출 줄 몰 랐다. 강원도에 있는 병원에서는 정확한 진단조차 내리지 못 했다. 희귀 난치성 질환인 혈우병 중중 A는 잘못 넘어지거나 작은 충격으로도 타박상 등 상처가 생기면 지혈이 되지 않아, 한번 병원에 가면 수혈 링거를 몇 개 씩 맞고 퇴원하기를 반복했었다. 

28세가 되어서야 나는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서 내가 앓고 있는 병이 희귀 난치성질환인 혈우병 중증 A란 걸 알았다. 혈우병은 피가 응고되지 않는 난치병이다. 일상생활 중 입은 작은 상처조차도 지혈이 되지 않는다. 반복된 출혈로 관절기능에도 이상이 생겼다. 방황과 함께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마음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먹었던 암흑과도 같았던 시절, 하지 만 인생을 포기하기엔 매우 아까운 젊은 나이. 그러나 팔다리 관절은 차 츰 굳어가고 병세는 점점 나빠만 져가는 듯해 나는 40세도 못 되어 세상 과 이별 할 것만 같았다. 좌절하지만 않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없다. 우 리는 매번 굳건해지고자 스스로 노력하지만, 모진 삶의 풍파 속에서 달관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게 아파본 적이 있겠지만 혈우 환우들에게 있어 아프다는 것은 아마도 익숙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감히 모든 혈우환우 들의 아픔과 고통을 일반화하진 않겠다. 다만 나의 작은 경험을 통해 나 와 비슷한 경험한 이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시 절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는 각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 이었다.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 불가능은 아니다. 현실에 만족스럽지 못 하다고 조건을 탓하지 말자”라는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듣게 된 멘트가 가슴 에 와 닿았다. 

나에게 단 하나 세상과 소통하는 창은 KBS 라디오 ‘내일은 푸른 하늘’ 프로그램이었다. 매일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방송되는 ‘내일은 푸른 하늘’ 프로그램은 나의 친구이자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으며 나 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준 소중한 천사였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세상과 소통해 보려고, 나의 처지와 일상생활 속의 소소한 이야기 들을 글로 표현하여 청취자 참여란에 여러 차례 투고해 보았다. 방 안에서 의 생활이 어언 15년을 넘어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1997년 어느 봄날, 나의 딱한 사정이 알려졌는지 한국혈우재단에서 향긋한 봄 내음과 같은 희망어린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서울까지 하루에 몇 시간씩 걸리는 불편한 교통편에도 마다하지 않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며 생사를 건 사투를 시작했다. 혈우병 은 피가 응고되지 않는 병으로, 인구 1만 명 당 한 명 꼴로 발생하는 출혈 성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예전에는 25세 이전에 뇌출혈 등 합병증으로 사 망하게 되는 병이었다. 나는 반복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한 곳에 오래 앉 아 있을 수조차 없었다. 언제 내 몸 어디에선가 핏줄이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질병을 평생 떠안고 살아가는 것이 괴롭기만 했다. 

요즘은 한국혈우재단 서울의원에서 한 달에 한 번 홍천의 집을 방문해 방문진료로 간호서비스를 지원해준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25년의 생을 덤으로 살고 있기에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하루에도 스스로 3개의 그린모노 약물주사를 맞고 고통을 이겨내지만, 누군가에게 조 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루가 더 주어지는 것에 신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그리하여 주어진 생애가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나보다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과 가족이 그리운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지원군이 되었으면 하는 바 람으로 시작하게 된 봉사가 어느덧 25년이 되었다. 

나를 위해 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나 또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행복을 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받아온 혜택을 다른 어려운 이들과 나눌 수 있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사랑과 희망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장애인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진심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작은 꿈이 있다면 하늘이 허락 하는 그 순간까지 지금처럼 봉사하며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더불어 나 자신의 자기 계발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여러 가지 분야에 도전하고 있자.' 앞으로도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할 이가 많기에 그들을 돕는 것을 결코 멈추고 싶지 않다. 비록 장애가 있는 몸으로 내세울 것은 없지만 마음의 곡간엔 언제나 사랑과 희망이 가득하기에, 하루하루 행복 을 느끼며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있음에 늘 감사하다. 

혈우 환우 여러분들 힘을 내시길 바란다. 신체가 장애지 마음마저 장애는 아니다. 움직일 수 있는 데까지 움직이고 생활전선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한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희망과 꿈은 나이와도 상관없고 장애인에게나 비장애인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진다.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하 지 말아야 한다. 물론 포기하지 않는다고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좌절로부터 끝내 딛고 일어선다면 지금보다 나 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앞서 말했듯이 좌절하지 않는 것은 때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시련이 닥치면 누구나 좌절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것, 분명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때때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놓아버리지 말아 야 한다. 그래야만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듯,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 몸이 힘들어도 외롭고 소외된 이웃, 장애인에게 따듯한 지원군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25년 전 받았던 사랑은 아마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 것이다. 40세가 될 때까지 집안에서만 생활해야 할 정도로 몸이 좋 지 않았지만 한국혈우재단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외출이 가능할 정도 로 호전된 나는 내가 받은 그 은혜를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 주고 싶다. 비록 여전히 몸이 많이 불편하지만 나 또한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앞으로도 항상 건강한 마음을 갖고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 

앞으로도 하늘이 허락하는 날까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웃이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홍천 전체에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기부천사로, 나누며 봉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게 나의 목표다. 늘 나는 ‘남을 도울 수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 이라고 말한다. 오늘도 나는 사랑과 희망이 가 득한, 휠체어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에 꿈을 싣고 있다.